In any case, that’s just how things are, and unfortunately they’re not liable to change.
어쨌든 상황이 그렇고, 안타깝게도 이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
This is why I’ve started the diary. To enhance the image of this long-awaited friend in my imagination,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친구의 모습을 내 상상 속에서 더 멋지게 그려보고 싶어서 말이야.
I don’t want to jot down the facts in this diary the way most people would do,
보통 사람들이 하듯이 일기장에 단순히 사실만 나열하고 싶지는 않아.
but I want the diary to be my friend, and I’m going to call this friend Kitty.
대신 이 일기장 자체가 내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친구를 ‘키티’라고 부를 거야.
안네가 일기장을 단순한 기록장이 아닌, 자신의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격체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Since no one would understand a word of my stories to Kitty if I were to plunge right in,
그런데 다짜고짜 키티에게 내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겠지?
I’d better provide a brief sketch of my life, much as I dislike doing so.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내 삶에 대해 짧게 소개해 볼게.
여기서부터는 안네가 일기장인 키티에게 자신의 가족사와 성장 배경을 들려주는 과거 회상 장면입니다.
My father, the most adorable father I’ve ever seen, didn’t marry my mother until he was thirty-six and she was twenty-five.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우리 아빠는 서른여섯 살 때, 스물다섯 살이었던 엄마랑 결혼하셨어.
My sister Margot was born in Frankfurt am Main in Germany in 1926. I was born on June 12, 1929. I lived in Frankfurt until I was four.
언니 마르고트는 1926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고, 나는 1929년 6월 12일에 태어났어. 난 네 살 때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살았지.
Because we’re Jewish, my father immigrated to Holland in 1933, when he became the Managing Director of the Dutch Opekta Company,
우리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아빠는 1933년에 네덜란드로 망명을 가셨어. 거기서 아빠는 네덜란드 오펙타 사의 사장님이 되셨지.
1933년은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해입니다.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자 안네의 가족은 안전을 위해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which manufactures products used in making jam.
그 회사는 잼을 만드는 재료를 생산하는 곳이야.
오펙타(Opekta)는 잼을 만들 때 걸쭉하게 해주는 성분인 펙틴을 주로 판매하던 회사입니다. 훗날 안네 가족이 은신하게 되는 건물이 바로 이 회사 건물이기도 합니다.
My mother, Edith Hollander Frank, went with him to Holland in September, while Margot and I were sent to Aachen to stay with our grandmother.
엄마인 에디트 홀랜더 프랑크는 그해 9월에 아빠를 따라 네덜란드로 가셨고, 언니랑 나는 할머니가 계시는 아헨으로 보내졌어.
아헨(Aachen)은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 국경 근처에 위치한 독일의 도시입니다.
Margot went to Holland in December, and I followed in February, when I was plunked down on the table as a birthday present for Margot.
언니는 12월에 네덜란드로 갔고, 나는 다음 해 2월에 갔어. 그때 난 언니의 생일 선물처럼 탁자 위에 툭 올려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