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right then,” he said, and got to work slicing cheese and onions.
“그래, 그럼 됐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치즈와 양파를 써는 일에 착수하셨다.
For the rest of the afternoon, I sort of lazed around, reading and daydreaming.
남은 오후 동안 나는 책을 읽거나 공상에 잠겨 빈둥거렸다.
And at school the next day, I couldn’t seem to concentrate. My thoughts kept turning back to David.
다음 날 학교에서도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데이비드 삼촌 생각뿐이었다.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맞이하는 월요일 학교 장면입니다.
I wondered what my grandparents had been like, and what they’d gone through, having a son like him.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분들이셨을까, 그리고 삼촌 같은 아들을 두어 어떤 일들을 겪으셨을까 궁금했다.
I daydreamed a lot about the sycamore tree, too, which at first I thought was because I was feeling melancholy.
플라타너스 나무에 대해서도 공상을 많이 했는데, 처음에는 내가 그저 우울한 기분이라 그런 줄로만 알았다.
But then I remembered how my mother had called the sycamore a testimony to endurance.
하지만 문득 어머니가 그 나무를 인내의 증거라고 부르셨던 게 기억났다.
testimony to endurance는 시련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인내의 증거 혹은 인내의 산물을 뜻합니다. 줄리의 어머니가 나무의 굽은 모양을 보고 하셨던 말씀이죠.
It had survived being damaged as a sapling. It had grown.
묘목일 때 입은 상처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그렇게 자라난 것이었다.
Other people thought it was ugly, but I never had. Maybe it was all how you looked at it.
다른 사람들은 그 나무가 못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모든 건 관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Maybe there were things I saw as ugly that other people thought were beautiful.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울 수도 있는 법이다.
Like Shelly Stalls. A perfect example! To me there was absolutely nothing to recommend her,
셸리 스톨즈처럼 말이다. 정말 완벽한 예시였다! 나에게 그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애였다.
but the rest of the world seemed to think she was the cat’s meow. Me-ow.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아주 끝내주는 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기가 찼다.
the cats meow는 1920년대에 유행했던 표현으로, 아주 멋진 것이나 최고인 사람을 뜻하는 관용구입니다.
Anyway, I sort of drifted through the week like that. Until Thursday.
어쨌든 일주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목요일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