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ebo lined On Jordan’s Stormy Banks, and church was over.
지보가 '요단강의 폭풍우 치는 강가에서'라는 찬송가를 선창했고, 예배는 끝났어.
드디어 엔딩 크레딧 올라간다! 지보가 선창하면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훈훈하게 마무리됐어. 아, 이제 진짜 집에 간다! 다들 고생 많았어!
I wanted to stay and explore, but Calpurnia propelled me up the aisle ahead of her.
나는 더 남아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칼퍼니아 아줌마가 나를 앞세워 복도 밖으로 밀어냈어.
호기심 많은 우리 스카웃, 교회 구석구석 더 구경하고 싶어 죽겠는데 칼퍼니아 아줌마 손바닥은 매몰차지. '얼른 안 나가?' 하고 등 떠밀리는 그 급박한 상황이야. 아줌마 힘이 장난 아니신 듯!
At the church door, while she paused to talk with Zeebo and his family, Jem and I chatted with Reverend Sykes.
교회 문 앞에서 칼퍼니아 아줌마가 지보네 식구랑 얘기하려고 잠깐 멈춘 사이에, 젬이랑 나는 사이크스 목사님이랑 수다를 떨었어.
이제 예배 끝나고 다들 밖으로 나가는 중이야. 칼퍼니아 아줌마는 지보랑 인사를 나누고 있고, 그 틈을 타서 애들은 목사님이랑 인사를 나누는 평화로운 퇴근길(?) 풍경이지.
I was bursting with questions, but decided I would wait and let Calpurnia answer them.
궁금한 게 아주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그냥 기다렸다가 칼퍼니아 아줌마한테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오늘 본 게 너무 신기하고 이상한 게 많았거든. 흑인 교회만의 독특한 분위기며 헌금 방식이며...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칠 것 같지만, 목사님 앞이라 일단은 꾹 참아보는 우리 스카웃!
“We were ‘specially glad to have you all here,” said Reverend Sykes.
“너희들이 여기 와 줘서 특별히 더 기뻤단다,” 사이크스 목사님이 말씀하셨어.
목사님이 아이들을 아주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장면이야. 백인 아이들이 흑인 교회에 오는 게 당시엔 흔치 않은 일이었을 텐데, 목사님 눈에는 이 꼬맹이들이 얼마나 예뻐 보였겠어?
“This church has no better friend than your daddy.”
“이 교회에 네 아빠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단다.”
이건 진짜 최고의 찬사야! 애티커스 핀치가 흑인 공동체에서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인지 이 한마디로 다 정리돼.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아빠 부심을 팍팍 심어주고 계셔.
My curiosity burst: “Why were you all takin‘ up collection for Tom Robinson’s wife?”
내 호기심이 빵 터져버렸어: "왜 다들 톰 로빈슨의 아내를 위해서 헌금을 걷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 궁금한 거 못 참는 스카웃, 예배 내내 입이 근질근질했을 거야.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목사님한테 질문 폭탄을 투척하는 장면이지. 톰 로빈슨이라는 이름이 나오니까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지네.
“Didn’t you hear why?” asked Reverend Sykes. “Helen’s got three little’uns and she can’t go out to work—”
"이유를 못 들었니?" 사이크스 목사님이 물으셨어. "헬렌에겐 어린 자식 셋이 딸려 있는데 일을 하러 나갈 수가 없단다—"
목사님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 헬렌은 톰 로빈슨의 아내인데, 남편이 억울하게 갇힌 상황에서 혼자 애 셋을 키우려니 얼마나 막막하겠어.
“Why can’t she take ‘em with her, Reverend?” I asked.
"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는 거예요, 목사님?" 내가 물었어.
아이들의 시선은 참 순수하지? 스카웃은 '아니, 애들 데리고 일하러 가면 되는 거 아냐?'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걸 이제 알게 되겠지.
It was customary for field Negroes with tiny children to deposit them in whatever shade there was while their parents worked—
어린 자식이 있는 농장 흑인들이 부모가 일하는 동안 그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아이들을 놔두는 게 관습이었어—
당시 흑인 농장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을 보여주는 대목이야. 어린이집은커녕 애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어서,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 밑에 애들을 두고 일해야 했던 거지.
usually the babies sat in the shade between two rows of cotton.
보통 아기들은 목화밭 두 줄 사이의 그늘에 앉아 있었지.
아이들이 어떻게 방치되어 있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목화밭 고랑 사이의 그 좁은 그늘이 그 아기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거야. 참 짠한 풍경이지?
Those unable to sit were strapped papoose-style on their mothers’ backs, or resided in extra cotton bags.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아기들은 엄마 등에 포대기처럼 업히거나, 남는 목화 자루 안에 들어가 있었어.
당시 흑인 노동자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일터인 목화밭까지 데려와야 했던 눈물겨운 상황이야. 애기들을 목화 자루에 넣어두다니, 지금 기준으론 상상도 못 할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