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ean, I’m still crazy, if that’s what you’re asking. There has been no change on the being crazy front.”
"제 말은, 선생님이 묻고 싶은 게 그거라면 난 여전히 미쳤다는 거예요. 미쳐 있다는 측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죠."
에이자가 자신을 'crazy'라고 지칭하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고 있어. 싱 박사가 완곡하게 돌려 물어도 에이자는 아주 직설적으로 '난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아버리지.
“I’ve noticed you use that word a lot, crazy. And you sound angry when you say it, almost like you’re calling yourself a name.”
"너는 '미친'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사용하는구나.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화가 난 것처럼 들려. 마치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싱 박사가 에이자의 언어 습관을 예리하게 포착했어. 자신을 '미쳤다'고 부르는 게 단순한 상태 설명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욕설처럼 들린다는 점을 지적하며 에이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어.
“Well, everyone’s crazy these days, Dr. Singh. Adolescent sanity is so twentieth century.”
"글쎄요, 싱 선생님, 요즘은 누구나 다 미쳐 있잖아요. 청소년의 온전한 정신이라는 건 너무 20세기 유물 같은 거죠."
에이자의 시니컬함이 폭발하는 대목이야. 싱 박사가 '미친'이라는 단어를 쓰는 에이자의 태도를 지적하자, 에이자는 아예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를 낡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해버리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해. 에이자식의 힙한(?) 방어 기제라고 할 수 있지.
“It sounds to me like you’re being cruel to yourself.” After a moment, I said, “How can you be anything to your self?
"내가 듣기에는 네가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고 있는 것 같구나." 잠시 후, 내가 말했다.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죠?"
싱 박사가 에이자의 자기 비하를 예리하게 짚어냈어. 하지만 에이자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나'라는 존재가 '나 자신'에게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느냐는 철학적인 의문을 던져. 상담을 받으러 와서 칸트 뺨치는 고뇌를 하고 있는 에이자의 모습이야.
I mean, if you can be something to your self, then your self isn’t, like, singular.” “You’re deflecting.” I just stared at her.
"그러니까, 만약 자기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자아라는 건 말하자면 단일한 게 아니잖아요."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구나." 나는 그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에이자가 '자아의 분리'라는 고난도 이론을 펼치며 자기 혐오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려고 해. 하지만 싱 박사는 단칼에 '말 돌리지 마(deflecting)'라고 제압해버리지. 전문가 앞에서는 어떤 현란한 철학도 통하지 않는 법인가 봐.
“You’re right that self isn’t simple, Aza. Maybe it’s not even singular.
"자아라는 게 단순하지 않다는 네 말은 옳단다, 에이자. 어쩌면 그건 단일한 게 아닐지도 모르지.
싱 박사가 에이자의 철학적 방어 기제를 의외로 쿨하게 받아들여. 에이자가 도망치려 했던 그 화제를 오히려 인정해주면서, 대화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가려는 상담 고수의 노련함이 보여.
Self is a plurality, but pluralities can also be integrated, right? Think of a rainbow.
자아는 복합적이지만, 그 복합성 또한 하나로 통합될 수 있어, 그렇지? 무지개를 생각해 보렴.
싱 박사가 에이자의 '분열된 자아' 타령에 맞불을 놓는 장면이야. 자아가 여러 개라고 해서 꼭 남남인 건 아니라는 거지. 무지개라는 찰떡같은 비유를 들고 나왔어. 박사님 상담 스킬 만렙이네!
It’s one arc of light, but also seven differently colored arcs of light.” “Okay, well, I feel more like seven things than one thing.”
“그것은 하나의 빛의 호이면서도, 서로 다른 일곱 색깔의 빛의 호이기도 하단다.” “네, 글쎄요, 저는 하나라기보다 일곱 개의 무언가처럼 느껴져요.”
박사님은 무지개가 하나이면서 일곱 색깔인 것처럼 자아도 통합될 수 있다고 희망 고문을 하는데, 에이자는 역시 뼈 때리는 대답을 해. '전 그냥 일곱 조각인데요?'라고. 에이자의 마음은 이미 무지개처럼 산산조각 난 상태인가 봐.
“Do you feel like your thought patterns are impeding your daily life?” “Uh, yeah,” I said. “Can you give me an example?”
“네 사고방식이 일상생활을 방해한다고 느끼니?” “어, 네,” 내가 말했다. “예를 하나 들어줄 수 있겠니?”
이제 박사님이 본격적으로 실무적인(?) 질문을 던져. 네 머릿속 생각들이 실제로 사는 데 얼마나 민폐를 끼치냐는 거지. 에이자는 '말해 뭐해요'라는 듯 긍정하고, 박사님은 구체적인 증거를 대라고 해.
“I don’t know, like, I’ll be at the cafeteria and I’ll start thinking about how, like, there are all these things living inside of me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식당에 앉아 있으면 제 안에 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요.”
드디어 에이자가 자기 머릿속을 괴롭히는 괴물의 정체를 실토해. 밥 먹는 즐거운 장소에서도 에이자는 자기 몸속에 우글거리는 박테리아 생각뿐이야. 샌드위치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미생물 군단과 하이파이브하는 느낌일걸?
that eat my food for me, and how I sort of am them, in a way—
그것들이 나를 대신해 내 음식을 먹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곧 그것들이라는 생각 말이에요—
에이자의 공포가 절정에 달하는 부분이야. 미생물이 내 밥을 뺏어 먹는 걸 넘어서, 아예 내가 그 미생물 덩어리가 아닐까 하는 존재론적 고민이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미생물이 먹는다 고로 미생물이다' 수준이야.
like, I’m not a human person so much as this disgusting, teeming blob of bacteria,
말하자면, 나는 인간이라기보다 이 혐오스럽고 바글거리는 박테리아 덩어리에 가깝다는 거죠,
에이자가 자신을 '인간'이 아닌 '미생물 덩어리(blob)'로 정의하고 있어. 'teeming(바글거리는)'이라는 단어에서 에이자가 느끼는 혐오감이 아주 생생하게 전달돼. 거울을 봐도 인간 에이자가 아니라 박테리아 군집만 보이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