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in this tale has a rock-solid hamartia: hers, that she is so sick; yours, that you are so well.
이 이야기 속 모든 인물은 견고한 '하마르티아(비극적 결함)'를 하나씩 품고 있지. 그녀에게는 너무 아프다는 점이, 자네에게는 너무 건강하다는 점이 그렇다네.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쓰며 비극의 정석을 논하네요. 한 명은 너무 아프고 한 명은 너무 건강한 게 문제라는 분석입니다.
Were she better or you sicker, then the stars would not be so terribly crossed,
그녀가 조금 덜 아팠거나 자네가 조금 더 아팠더라면, 운명의 별이 이토록 가혹하게 엇갈리지는 않았을 텐데.
운명의 장난이라는 게 참 잔인합니다. 두 사람의 병세가 비슷했다면 오히려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일까요?
but it is the nature of stars to cross, and never was Shakespeare more wrong than when he had Cassius note,
하지만 별들이 서로 엇갈리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지.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을 때보다 더 틀렸던 적은 없었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본인의 철학을 드러냅니다. 잘못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운명에 있다는 주장이겠죠?
“The fault, dear Brutus, is not in our stars / But in ourselves.”
"친애하는 브루투스, 잘못은 우리 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인간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숙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반 호텐은 이 문장을 아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이시나요?
Easy enough to say when you’re a Roman nobleman (or Shakespeare!), but there is no shortage of fault to be found amid our stars.
자네가 로마 귀족(혹은 셰익스피어)이라면 그렇게 말하기 쉽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의 별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잘못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네.
로마 귀족이나 대문호처럼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일침입니다. 현실의 비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꼬집습니다.
While we’re on the topic of old Will’s insufficiencies, your writing about young Hazel reminds me of the Bard’s Fifty-fifth sonnet,
윌 영감(셰익스피어)의 부족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어린 헤이즐에 대해 쓴 자네의 글은 그 대문호의 소네트 55번을 떠올리게 하더군.
헤이즐을 향한 어거스투스의 진심 어린 글이 반 호텐의 마음을 조금은 움직인 것 같네요. 소네트 55번까지 언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듯하죠?
which of course begins, “Not marble, nor the gilded monuments of princes, shall outlive this powerful rhyme;
당연히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네. "대리석도, 왕후들의 화려한 기념비도 이 강력한 운율보다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모든 비석이 깎여나가도 문학만은 남는다는 시의 시작입니다. 어거스투스의 글도 그만큼 강렬했다는 뜻으로 읽고 싶군요.
but you shall shine more bright in these contents than unswept stone, besmear’d with sluttish time.”
"하지만 자네는 추잡한 세월에 더럽혀진 채 아무도 쓸지 않은 비석보다 이 시구 속에서 더 밝게 빛날 것이니."
거친 세월 속에서도 헤이즐의 존재는 시 안에서 영원할 것이라는 찬사입니다. 문학적 석관 속에 그녀를 박제하려는 걸까요?
(Off topic, but: What a slut time is. She screws everybody.)
(여담이지만, 시간이라는 건 정말 잡스럽군. 모두를 엿먹이니 말이야.)
시간이라는 존재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파멸시킨다는 냉소적인 표현이죠. 욕쟁이 할아버지 같은 반 호텐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It’s a fine poem but a deceitful one: We do indeed remember Shakespeare’s powerful rhyme, but what do we remember about the person it commemorates?
훌륭한 시지만 기만적인 시이기도 하네. 우리는 확실히 셰익스피어의 강력한 운율을 기억하지만, 그 시가 기념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시는 남지만 그 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잊힌다는 모순을 지적하네요. 기록의 허망함에 대해 묻고 있는 거죠?
Nothing. We’re pretty sure he was male; everything else is guesswork.
아무것도 없지. 우리는 그저 그가 남성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며, 나머지는 전부 추측일 뿐이라네.
결국 남는 건 텍스트뿐이고 실체는 사라진다는 허무주의적 관점입니다. 우리 어거스투스가 원하는 영원함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입니다.
Shakespeare told us precious little of the man whom he entombed in his linguistic sarcophagus.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언어적 석관 속에 매장한 그 남자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 것이 거의 없네.
언어가 대상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둬버린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죠. 박제된 나비처럼 말만 남고 생명력은 사라진다는 뜻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