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 there’s a kid who has hardly left the waiting room since you got here,” she said.
"글쎄, 네가 여기 온 뒤로 대기실을 거의 떠나지 않고 있는 애가 하나 있던데." 그녀가 말했다.
어거스터스의 정성이 정말 대단합니다. 대기실 죽돌이를 자처하며 헤이즐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네요. (이런 남자가 대기실 지키고 있으면 병원 밥도 맛있겠어 ㅠ)
“He hasn’t seen me like this, has he?” “No. Family only.” I nodded and sank into an aqueous sleep.
"그 애가 내 이런 모습을 본 건 아니죠?" "아니. 가족 외에는 출입 금지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추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소녀의 마음이죠. 가족만 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안심하고 다시 잠에 빠집니다.
It would take me six days to get home, six un-days of staring at acoustic ceiling tile
집에 가기까지 엿새가 걸렸다. 천장의 방음 타일을 멍하니 바라보며 보낸, 날짜라고 부르기도 무의미한 엿새였다.
날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시간들입니다. 병실 천장의 타일을 다 외울 때쯤에야 퇴장이 허락되나 보네요.
and watching television and sleeping and pain and wishing for time to pass.
TV를 보고, 잠을 자고, 통증을 견디며 제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는 시간들이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왜 그렇게 느리게 흐를까요. 그저 통증 없이 시간이 삭제되기만을 바라는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I did not see Augustus or anyone other than my parents. My hair looked like a bird’s nest; my shuffling gait like a dementia patient’s.
부모님 말고는 어거스터스도,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은 까치집 같았고, 발을 끌며 걷는 모습은 치매 환자 같았다.
투병의 흔적이 외모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사랑해줄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I felt a little better each day, though: Each sleep ended to reveal a person who seemed a bit more like me.
하지만 매일 조금씩 상태가 나아졌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거울 속에는 조금 더 나다운 사람이 나타났다.
조금씩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뭉클하네요. 거울 속의 내가 낯설지 않을 때 비로소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가 된 겁니다.
Sleep fights cancer, Regular Dr. Jim said for the thousandth time as he hovered over me one morning surrounded by a coterie of medical students.
잠이 암과 싸워 준단다. 어느 날 아침, 의대생 무리에 둘러싸인 채 내 위로 몸을 숙이며 단골 의사인 짐 선생님이 천 번째쯤 되는 같은 말을 했다.
짐 선생님의 암 예방 철학이 거의 주기도문 수준으로 반복되는군요. 잠이 보약이라는 건 만고의 진리인 모양입니다.
“Then I am a cancer-fighting machine,” I told him. “That you are, Hazel. Keep resting, and hopefully we’ll get you home soon.”
"그럼 전 암과 싸우는 기계네요."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럼, 헤이즐. 계속 푹 쉬렴. 조만간 집에 갈 수 있게 해보자꾸나."
자신을 암과 싸우는 기계라고 칭하는 헤이즐의 자조 섞인 농담이 꽤 매력적이죠. 얼른 병원 밖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On Tuesday, they told me I’d go home on Wednesday. On Wednesday, two minimally supervised medical students removed my chest tube,
화요일에는 수요일에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수요일이 되자, 거의 감독을 받지 않는 의대생 두 명이 내 가슴에 꽂힌 관을 제거했다.
의대생들이 실습 대상 보듯 가슴에서 관을 뽑다니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초보한테 내 몸을 맡기는 건 역시 중력 10배 체험보다 무서운 일이야 ㅋ) 환자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순간이었겠죠?
which felt like getting stabbed in reverse and generally didn’t go very well, so they decided I’d have to stay until Thursday.
그것은 칼에 꽂히는 느낌을 거꾸로 돌린 것 같았고 대체로 순조롭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내가 목요일까지 더 머물러야 한다고 결정했다.
퇴원 일정이 꼬이는 것만큼 환자 기운 빠지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가슴에 꽂힌 관을 제거하는 고통이 문장 너머로 전해지는 듯하네요.
I was beginning to think that I was the subject of some existentialist experiment in permanently delayed gratification
나는 내가 영구적으로 지연된 보상을 다루는 어떤 실존주의적 실험의 대상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존주의 실험이라는 표현으로 짜증 나는 상황을 지적으로 승화시킵니다. 주인공의 냉소적인 철학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죠.
when Dr. Maria showed up on Friday morning, sniffed around me for a minute, and told me I was good to go.
금요일 아침 마리아 선생님이 나타나 잠시 내 상태를 살피더니, 이제 가도 좋다고 말했을 때였다.
드디어 마리아 선생님의 퇴원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기 위해 주인공이 버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네요.